실재의 벽과 전시

김동훈 | 철학자

제4의 벽과 가상과 현실의 경계 옮기기

작가는 ‘제4의 벽’과 감동에 대한 관계를 숙고한다. 감동은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이 받은 감동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누군가 감동을 받았다는 말에 대해 일단 의심한다. 감동에 대해 의심해야할 이유를 작가는 '제4의 벽'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

<배우와 관객의 무간섭으론 부족하다>
제4의 벽’이란 연극에서 배우와 관객의 무간섭을 위해서 무대와 객석에 세워둔 보이지 않는 일종의 ‘가상의 벽’이다. 관객과 배우가 그 벽을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벽 너머에 있는 관객과 배우를 서로 쳐다볼 수는 있어도 간섭하지 않는다. 벽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배우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벽 안에 있다고 상상하여 배역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는 한편 관객은 배우가 연기하는 공간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그 배역에 빠져들게 된다. 배우나 관객 모두 이 가상의 벽을 통해 공연에 몰입하면 할수록 큰 감동을 받는다.
단순히 생각하면 관객과 배우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양측 모두 연기나 배역에 몰입하는데 제4의 벽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경우의 감동의 요인도 간단하다. 배우나 관객 모두 배역에 몰입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박신양 작가는 감동을 단순화시키거나 감동의 조건을 일원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감동의 조건을 만들어 그것을 강요하거나 뽐내는 것에 큰 반감을 갖고 있다. 결국 작가는 제4의 벽을 무간섭 원칙에서 오는 일원화된 감동으로 여기는 것을 반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는 배우나 관객이 모두 배역에 몰입하는 데서 오는 천편일률적인 감동을 부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작가는 제4의 벽이 감동을 더 잘 받도록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제4의 벽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단 작가가 주장하는 제4의 벽은 무간섭용 '바리케이트'는 아니다.

<다양한 시선에서 생기는 감정>
작가는 감동은 자극제를 통해 생기는 감정의 움직임 내지 감정의 변화로 이해한다. 감정의 종류가 많으면 그만큼 감정의 변화도 다양하게 되면서 감동도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제4의 벽은 관객과 배우의 구분만이 아니라 감정의 구분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얻게 되는 감동도 당연히 많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제4의 벽은 관객과 연기자 사이에 경계를 만들면서 감정의 가짓수와 그 조합되는 경우의 수를 다양해지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감정의 종류가 많아지는 것은 다양한 시선과 시점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 확보되어야 하며, 또한 그 영역을 위해서 경계가 있어야만 한다. 감정의 구분이라는 관점에서 제4의 벽과 감동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연극의 경우를 보자. 관객은 객석의 시점에서 가상의 벽 너머에 펼쳐지는 연극 자체에서, 또 한편 배우는 무대의 시점에서 가상의 벽 안에서 펼쳐지는 자신들의 연기 자체에서만 어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면 관객과 배우의 무간섭이라는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이 정도에서 그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연극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감정은 제4의 벽을 오가면서 다양하게 변하여서 감동이 발생할 확률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이것은 배우나 관객이 모두 배역에만 몰입해서 얻는 단순한 감동과는 분명히 다르다.

각각의 배우들과 관객들은 적어도 무대에 관련된 감정들과 객석에 관련된 감정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 <조커>의 배역을 맡은 호야킨 피닉스의 연기를 본다고 하자. 그 연기를 본 관객이 조커라는 배역 자체에 공감을 느끼거나 연민을 느낄 수도 있고, 조커라는 캐릭터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펼친 호야킨 피닉스에 열광할 수도 있다. 관객의 시선으로 공연을 보더라도 이때의 감동은 분명히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조커에게 연민을 느낀 관객이 제4의 벽을 넘어 조커와 같은 처지의 자신에게 연민을 느낄 수도 있으며, 또는 호야킨 피닉스에 연민을 느낀 배우 지망생이 제4의벽을 넘어 자신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도 있다. 이제 배우의 시점에서 보자. 조커 연기를 하는 호야킨은 자신의 연기를 관람할 관중을 상상하며 연기를 할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대본이나 시나리오에 입각해서 연기할 수도 있다. 또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조커라는 캐릭터에 몰입하여 연기할 수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호야킨은 조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기를 했다가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나서야 그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야킨 피닉스는 철저하게 대본을 보면서 자신의 연기를 볼 관객을 상상했을 것이다. 여기서 보면 여러 시점과 시각을 통해 감정의 변화 양상이 그만큼 더 다양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우와 관객이 단지 배역에만 몰입하여 감정의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다.

객석과 무대의 시점에 따라 각각의 감정을 따져본다면 그 감동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제4의 벽을 중심으로 관객의 시점에서 연극이라는 가상과 자신들의 현실을 오가면서 감정의 변화가 생길 것이며, 배우의 시점에서 자신들이 가상화시킨 연극과 객석, 그리고 자신들의 실재 삶을 오가면서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맛볼 것이기 때문이다.
감동은 특정 시점에 따라 다르게 일어나며 시점이 다른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정의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감동이라는 한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사람 수만큼 저마다 다른 감정의 변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박 작가는 이 가상의 벽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거기서 얻은 감동은 최종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의심받아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제4의 벽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얻은 감동의 내용은 동일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
그런데 작가는 감정의 더 많은 경우수라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제4의 벽을 독특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것(제4의 벽)은 상상의 본능과 그것이 초래한 구조와의 관계의 다른 말이며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무대에 비교적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상상이라는 단어에서 당장 때려부숴야할 어떤 태세를 갖추지는 않는다."
여기서 작가는 제4의 벽을 "상상의 본능과 그것이 초래한 구조와의 관계의 다른 말" 이라고 하고 그것을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이라 한다. 제4의 벽이 단순히 배우와 관객의 '가상의 벽'이 아니라 그 가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본능과 그것의 구조 관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4의 벽에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상상이 생길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며 거기에 어떤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즉 제4의 벽은 상상과 관련된 구조를 만드는데 그 구조가 바로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이라는 구조인 것이다.
우선 상상의 본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상상이라는 시선에 깔려 있는 전제를 살펴보자.
첫째, 이 벽은 실재의(real) 벽이 전제되어 있다. 연극이 상연되는 동안 관객이나 배우는 이 벽을 실재하는 집 벽이나 방 벽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니까 제4의 벽을 상상한다는 것은 집 벽이나 방 벽처럼 실재의 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상상의 본능에는 실재에 있음이 전제된다.
둘째, 이 벽이 가상의(virtual) 벽인 것은 현장에 없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연극(act)을 하고 있는 현장의(actual) 벽이 아니라 그 공간에 함께 하는 배우와 관객의 상상 속에 있다. 이 사람들은 저마다 실재의 벽을 보았었고 현장에 그 벽이 없었기 때문에 상상하는 벽이다. 상상의 본능에는 현실에 없음이 전제된다.
‘상상’이란 ‘실재’로는 있는데 '현실'에서는 없애고 인간에게 남은 내용물이다. 실재의 맥주는 알코올이 있는데 현실에서 알코올을 쏙 빼고 남은 맥주가 '알코올 없는 맥주', 즉 가상의 맥주다. 우리 주면에는 이런 '가상-화'로 가득하다. '가상의 벽'이란 '실재하는 벽'이지만 무대 현장에서는 없고 배우와 관객의 머릿속에 남은 내용물이다. 결국 상상이란 실재에 있지만 현실에 없는 무엇인가가 인간에게 그 실재의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의 본능 때문에 초래한 구조는 무엇인가? 가상, 현실, 실재가 그 구조이며 거기에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제4의 벽은 "상상의 본능과 그것이 초래한 구조와의 관계의 다른 말"이 된다.

<제4의 벽을 이동시키라>
작가는 고정화된 일방적인 감동에 “저항”하라고 한다. 작가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4의 벽의 위치를 이동시키라"고 한다. 제4의 벽을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으로 정의했으니까 이 명령은 곧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이동하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이 경계를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1. 배우(상상)와 관객(현실)의 분리로 보는 관점, 2. (상상에 있고 현장에 없는 무대의) 가상의 벽으로 보는 관점, 3. (상상에 있고 현장에 없는, 하지만 실제 삶에는 있는) 실재의 벽으로 보는 관점이 그것이다.
첫째,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배우와 관객의 분리로 보는 관점. 무대를 가상으로, 객석을 현실로 보는데 여기서 경계를 이동한다는 것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과 같다. 가상에 있는 배역들이나 그 가상을 현실에서 보는 관객들은 보이지도 않은 경계선으로 구분되어진다. 이때 그 경계선을 이동한다는 것은 간혹 연기 도중 배우들이 불문률과 무간섭의 원칙을 깨고 객석을 향해 말을 걸거나 관객들이 연극에 참여하는 경우와 같다.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의도적으로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익숙하다. 이미 마당극에서 이런 광경을 많이 봤었고 버스킹에서 관객의 참여가 필요할 때 놀랍게 나서는 것도 우리들이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의 '뗏창'도 무대와 객석을 넘나드는 마당극 전통에 뿌리를 두었다고 보기도 한다. 분명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런 모습에서 벽의 위치 이동을 볼 수 있다.
둘째,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상의 벽인 제4의 벽 자체에 두는 관점. 경계를 이동한다는 것은 제4의 벽을 가상에서 현실로, 또는 현실에서 가상으로 옮기는 것이다. 제4의 벽이 가상인 이유는 연극 현장에는 분명 없는데 배우와 관객의 머릿속에는 남았기 때문이다. 이때 경계를 이동시키는 경우는 배우가 연기(act)에 몰두한 나머지 그 벽 너머에 있는 관객이나 연기를 하는 자신은 전혀 의식되지 않고 캐릭터에만 몰입할 때이다. 이때 제4의 벽은 그 순간 배우에게 만큼은 가상의벽이 아닌 현실의(actual) 벽이 된다. 이 배우는 상상의 벽에서 현실의 벽으로 이동한 것이다. 없는 벽을 있다고 상상하던 상태에서 현실에 있다는 몰입이 더 강해질수록 그 배우의 연기는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 또 무대 현장에서 있지도 않은 벽은 원래 무대 바깥 현장(현실)에 있는데 그 현실의 벽을 무대에서는 가상의 벽으로 이동해야 한다. 벽의 경계선을 이동하라는 의미는 이렇듯 벽 자체가 지닌 가상성과 현실성을 넘나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째,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실재의 벽으로 보는 관점. 지금 공연되고 있는 곳에서 제4의 벽은 분명 없는 반면 배우와 관객의 머릿속에는 있다. 배우나 관객이 보는 영역, 시각 영역에는 없고 머릿속에는 있다. 하지만 벽이란 것은 세상에 버젓이 있는 것이다. 연극 공간에서는 없는 것이고 머릿속에는 있다. 그 머릿속이 가상이라고 치고 무대가 현실이라고 치면, 제4의 벽은 상상에는 있고 현실(현장)에는 없지만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관점은 무대와 객석만 생각하는 관점보다 한 차원을 더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에는 없지만 가상에는 있고, 그 가상에서 가능한 것은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영역, 즉 실재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때 세상을 위의 둘째 경우처럼 현실로 보는 것이 아니고 실재로 본다는 점에서 둘째와 세째의 차이가 있다. 즉 둘째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대에 있는 가상의 벽으로 보는 것이고 세째는 무대 바깥 세상에 있는 실재의 벽으로 보는 것이다.

<실재의 벽>
‘가상’이란 ‘실재’에는 있는데 '현실'에는 없애고 인간에게 남은 것이고, ‘현실’이란 ‘실재’로는 있는데 가상에 남겨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대에서 상상이 가능한 것은 실재의 벽이 현장에 없기 때문이고 어떤 배우가 연극에 몰입한 나머지 무대에 없는 제4의 벽을 있다고 믿는다면 실재의 벽이 그 배우의 가상에는 없는 게 된다. 물론 그렇지 못한 배우나 관객들에게는 현실에는 없고 가상에 그 벽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무대에서 벽이 가상에 있든지 현실에 있든지에 상관 없이 무대 밖 세상에 실재의 벽은 여전히 있으면서 그것이 무대에 있는 배우나 관객의 상상 속에 있든지 몰입하는 연기의 현장에 있다.
현실의 벽은 무대 밖 세상에 있는 실재의 벽을 배우의 연기 현장에 옮긴 것과 다름 없다. 상상의 벽은 실재의 벽을 가상으로 옮긴 것과 다름 없다. 상상이 되든지 현실이 되든지 실재의 벽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실재의 벽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상상과 현실이 구분된다. 그러니까 상상과 현실의 구분은 실재의 벽이 상상과 현실 중 어디로 이동하였는지로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실재를 중심으로 가상이 되기도 하고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은 실재가 어디로 이동하는지로 간략화할 수 있다. 결국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실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박 작가는 세번째 관점, 즉 제4의 벽을 실재의 벽으로 본다고 할 수 있다. 즉 가상성과 현실성을 구분하는 그 실재를 중심으로 가상과 현실이 넘나드는 것을 벽의 위치 이동으로 강조하며, 이를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재의 벽을 이동한다는 것은 상상과 현실의 내용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이분화된 세상 너머 차원의 시각이 가능하게 한다.

<제4의 벽과 전시 공간>
가상이나 현실에 있든 없든 벽은 실재한다. 가상과 현실 이외의 또 한 영역을 질 들뢰즈는 실재라 했다. 실재에 있는 벽은 4가지 경우를 갖게 된다. 1. 가상의 영역으로 가상에 있고(무대의 배우와 관객의 상상) 현실(무대 현장)에 없거나, 2. 현실의 영역으로 가상에 없고 현실에 있거나(캐릭터에 몰입한 몰아적 배우), 3. 가상과 현실 너머 영역으로가상과 현실에 모두 없거나(연극 공연 보러가서 딴 생각하는 관객이나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배우), 4. 가상과 현실을 포함한 실재 영역으로 모두 있거나(몰아에 빠진 배우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무대 상상을 하는 관객 또는 관객에 공감하면서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 할 것이다. 이 4가지의 모두의 시점을 다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 박 작가가 예술 세계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생각한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옮기는 것은 상상, 현실, 실재의 영역에서 다양한 시선과 시점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4의 벽을 이동하라는 것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이동된다는 말이고 결국 이것은 실재를 인정하면서 어느 영역에 있던지 그곳들의 다양한 시점과 시선을 주체적으로 소유하자는 의미가 된다.
이제 박신양 작가는 연극에 있는 제4의 벽 개념을 완전히 다른 토양인 회화 예술의 영역에 이식하려 한다. 그는 연극이 되었든지 회화가 되었든지 제4의 벽을 인정하되 그 벽의 경계선을 이동하라고 주장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설정함으로 생기는 상상과 현실, 심지어 실재까지도 특정 영역으로 고착시키지 말고, 각각 그 너머로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그 세계에서 예술가의 감정은 더 풍성해질 것이고 그것을 보는 관객은 다양한 시점과 시선을 통해 더 풍성한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감동이란 “저 너머 상상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화될 때 느끼는 감정”즉 실재의 벽을 전시 현장으로 옮겼을 때 느끼는 감정의 변화로 말한다. 실재가 현실이 될 뿐만 아니라 가상이 되는, 계속되는 넘나듦이 있을 때 감동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실재의 벽을 어디로 옮기든지 그 영역에서 자신만의 주체적인 시점을 갖게 된다. 자신만의 시점이 맞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다양한 시선도 맞는 것이다. 실재란 우연한 기회에 가상-화에 실패하여 현실에 드러나기도 하고, 또 우연한 기회에 현실화에 실패하여 가상에만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우연성을 모두 받아들이며 가상, 현실, 실재의 영역을 묵묵히 바라볼 때 거기에서 각양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감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 회화에서 박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인 실재를 각 사물에서 발견하고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매개를 작품에 배치하고 표현해 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가상과 현실, 그 경계인 실재에서 가능한 시점을 그림에 표현하기에 한계를 느낀 것 같다. 이제는 제4의 벽 개념을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전시 공간에 펼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찌기 세잔이 다시점의 그림들과 베이컨이 살덩어리의 그림들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실재의 세계를 박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표현하다가 이제 한 차원 너머의 세계인 전시 공간에 표현하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전시에는 현실과 상상이 구현될 것이고, 또 현실과 상상의 경계인 실재가 표현될 것이다. 실재의 벽을 현실과 상상을 다 포함한 일원론으로 본다면 박신양 작가의 전시는 이 땅에 있었던 예술품 전시가 아니라 실재의 전시가 될 것이다. 제4의 벽을 전시로 기획한 박 작가의 의도를 공식화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전시(실재, 표현) = 작업실(현실 구현) + 그림(상상 재현)

다양한 시점이 가능하도록 실재의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전시 공간은 예술가가 되었든 관람객이 되었든 모두 각자의 시점이 가능한 세계다. 그 시점을 열어둔 작가의 주체성과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관람객의 주체성이 만나는 지점이 작가의 혁신적 전시가 될 것이다.

아마도 박 작가의 전시는 감정의 운동인 감동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실재의 언어를 가상이나 현실에서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언어의 운동’이 있을 것이다. 즉 실재, 가상, 현실을 넘나드는 표현의 운동이 활력을 가질 때 작가가 소망하는 제4의 벽의 위치 이동이 가능할 것이며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도 실재를 체험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박신양 작가는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상상과 현실의 사이-길을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그 길은 상상도 통과하고 현실도 통과하여 언제든지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길이다. 아마도 박신양 작가는 연극 공연의 실재성을 예술 전시로 도입한 도전적인 예술가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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